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말리 제국 (문단 편집) ==== 만사 무사 ==== [[파일:768DABBD-B619-4CE2-A961-C1360FD5490A.jpg]] [[만사 무사]]의 순례길. 말리 제국의 제9대 [[만사]]인 만사 무사, 혹은 무사 케이타 1세[* [[만사]]는 말리 제국의 [[황제]]를 의미하는 칭호다. 따라서 만사 무사 황제라고 쓰는 것은 옳지 않으며, 때에 따라서는 앞의 '만사'를 빼고 그냥 '무사 1세'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말리 제국의 황금기를 이끈 위대한 황제였다. 1312년경[* 그보다 더 이른 시기일 수도 있다.]에 황제에 즉위한 만사 무사는 상당히 신실한 [[무슬림]]이었기에 [[이슬람교]]를 말리 제국에 제대로 이식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는 귀족들이 자연스레 이슬람교를 '고급스러운 종교'로 인식하게 만들어 귀족층과 지배층들이 이슬람교를 믿도록 했지만, 토속 신앙을 유지하고자 하는 바람이 강했던 평민층이나 하류층에게는 이슬람을 강요하지 않으며 평화로운 공존 정책을 폈다. 만사 무사의 이슬람에 대한 열정은 꽤나 굉장했다. [[라마단]]의 끝을 알리는 '이드 알피트르'를 국가적인 대축제로 만들었고, 전국에 수많은 모스크들과 대학을 세워 그곳에서 이슬람 신학을 논하도록 했다. 만사 무사는 개인적으로도 [[아랍어]]를 자유자재로 읽고 쓸 수 있었으며 [[팀북투]] 등 대학들이 밀집한 도시에 학문을 장려하면서 중세 말리의 문화를 꽃피우는 업적을 남겼다. 만사 무사가 여러 말리 황제들 중 가장 유명한 이유는 '''엄청난 황금과 부''' 때문이다.[* 참고로 만사 무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부유한 인물'''이었다. 그의 재산을 현대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약 4,000억 달러. 한화로는 '''575조 원'''이다. 현재 세계 최고 부자인 [[일론 머스크]]도 2021년 기준 재산이 379조 원 밖에(...) 안된다.] 만사 무사는 1324년부터 1326년까지 [[메카]]를 향해 성지순례를 떠났다. 이 순례길에서 만사 무사는 최소 500여 명의 경호원에 몇 만명에 달하는 시종들을 데리고 길을 떠났는데, 이들 모두에게 '''1인당 1.5kg'''에 달하는 황금을 주어 치장하게 하고 들르는 도시마다 여러 물건들을 사도록 했다.[* 만사 무사는 자신을 따르는 노예들에게 노예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큼직한 황금 주괴를 하나씩 손에 들리고 비단옷을 입혀 화려하게 치장했다. 또한 병사들에게는 큰 순금 지팡이를 주어 걸어가게 했다고.] 또한 짐을 옮길 100여 마리의 코끼리, 수 백마리의 낙타를 함께 끌고 다녔으며, 이들 역시 등마다 황금을 그득그득 이고 있었다는 소문이 전해져 내려온다. 그는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를 통과하면서 [[터키]]나 [[에티오피아]]의 노예 소녀들을 사들이는 등 말그대로 금을 물쓰듯이 써댔는데, 만사 무사가 하도 많이 금을 뿌려댄 탓에 금값이 대폭락해서 이집트는 '''12년 가까이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한 개인이 지나치게 많은 돈을 써서 한 국가에 인플레이션이 닥쳤으니 당시 만사 무사가 얼마나 많은 금을 썼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당시 만사 무사가 메카로 성지 순례를 떠나면서 지나칠 정도로 많은 돈을 쓰고 행렬을 화려하게 치장한 것은 당시 낙후된 지역으로 알려져 있던 말리 제국을 지중해권과 아랍권에 제대로 된 문명국이자 강대국으로 각인시킬 목적도 있었다. 그의 계획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고, 만사 무사가 금을 물쓰듯 순례를 했던 덕에 아랍인들과 유럽인들은 '저 아프리카 어딘가에 황금이 넘치는 대제국이 있다더라'라는 식으로 말리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되었다. 만사 무사의 순례길이 얼마나 이집트인들에게 큰 충격으로 남았던지 이 이야기는 저 [[지중해]]를 넘어 [[베네치아]]의 상인들에게까지 전해지면서 약 몇 백여년 동안 오래오래 남아 말리에 대한 환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만사 무사는 순례 이후 말리로 돌아온 이후에도 학문 진흥과 국력 강화에 힘쓰며 10여 년 간을 더 재위했다. 그는 메카로 순례를 떠났을 때 아랍에서 데려온 건축가들에게 명령해 제국의 중심도시였던 [[팀북투]]와 [[가오(도시)|가오]]에 새로운 대학과 도서관, 궁전들을 대거 지었다. 특히 만사 무사의 재위 말년에 이르자 말리의 상코레 대학은 그야말로 완벽한 대학의 면모를 갖추면서 아프리카 최대의 대학들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상코레 대학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불타 소실된 이래 아프리카에서 가장 거대한 도서관이었으며, 약 25,00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었고, 100만 권에 달하는 장서들을 소장하면서 이슬람 신학과 과학, 문학 등에 있어서 말리 제국의 황금기를 찍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